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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새 시대 여는 첫걸음’… 닛산 ‘으쓱’ - 전기자동차의 대진격

인산철뱅크 2009. 8. 19. 10:46

지난 8월 2일 일본 요코하마에 새로 건립된 닛산자동차의 글로벌 본사. 이날 이곳에선 닛산이 내년부터 본격 양산할 예정인 전기차 '리프(LEAF)'가 세계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회장은 발표회장에서 "우리는 (전기차가 공개된) 오늘을 현실로 만들려고 지치지 않고 노력해 왔다"며 "연료를 덜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쓰지 않는 차량을 내놓은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닛산은 리프를 연간 5만 대 규모로 생산해 내년에 일본과 미국, 일부 유럽 시장에 우선 판매한 뒤 2012년에는 전 세계로 판매 시장을 확대할 방침이다.

세계 자동차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일본의 자동차 업계가 전기자동차 개발과 판매에 사활을 건 경쟁에 돌입했다.

미쓰비시자동차가 지난 6월 전기자동차 '아이미브(i-MiEV)'를 출시하면서 경쟁에 불을 붙였지만 세계 최대의 대량 양산 체제를 선언한 곳은 닛산자동차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의 성공 여부는 전지 생산 업체의 기술 혁신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지 값이 전기자동차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전지 가격이 획기적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이는 자동차 업체에 경영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불꽃 튀는 전기차 양산 경쟁= 닛산자동차는 2012년까지 일본은 물론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자동차인 리프의 연산 30만 대 생산 체제를 갖추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닛산의 전기자동차 생산 계획은 전기차 경쟁에 불을 붙인 미쓰비시자동차의 20배에 달한다. 미쓰비시자동차는 2011년까지 연간 1만5000대의 전기자동차를 판매하겠다고 지난 7월 발표했었다.

세계 1위의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는 휘발유와 전기모터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카인 '신형 프리우스'를 지난 5월 발매한 이후 25만 대의 주문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공격적인 전기자동차 생산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하이브리드카 개발에서 뒤처지는 듯한 모습을 보여 온 닛산의 전기자동차 양산 선언은 세계 자동차 업계에 대한 '선전포고'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닛산자동차는 그동안 하이브리드카 판매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도요타나 혼다와의 경쟁에서 고전했다. 그러나 전기자동차로 판세를 뒤집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세계 각국의 환경 규제나 자동차 업계의 기술 개발 수준, 소비자의 관심 등을 고려할 때 친환경차 개발과 판매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날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배어난다.

닛산자동차의 2012년 이후 전기차 판매 시장에는 한국도 포함돼 있다. 전기차는 최근 국내에서 판매가 개시된 하이브리드카보다 더 친환경적으로 진화한 차량인 만큼 정부와 국내 완성차 업계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한국에 대한 닛산의 전기차 출시 일정은 한국 정부가 충전소 건립이나 세금 감면 등 전기차를 판매·운행하는 데 필요한 지원책을 언제, 어느 수준에서 마련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도시유키 시가 닛산자동차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전기차를 해외에 출시하는 데에는 해당 국가의 전기차 지원책이 어떤지가 매우 중요한 변수"라며 "한국 정부도 하이브리드카 모델 등 친환경 차량에 관심이 높은 만큼 전기차 판매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도 마련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닛산자동차가 공개한 전기차 리프는 4∼5인이 탈 수 있는 중소형차 크기로 용량 24kW의 얇은 판 모양의 리튬이온 배터리와 전기모터가 탑재된 전륜구동 차량이다. 전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가정용 200V 전압으로 완전히 충전하기까지 8시간이 걸린다. 급속 충전기를 쓰면 30분 만에 최대 용량의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1회 완전 충전으로 160km를 달릴 수 있고 최고 속도가 시속 140km를 넘는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11초다. 모터를 제어하는 고유 기술을 적용해 가속페달을 밟으면 기존 엔진 차량보다 가속에 붙는 정도가 빠르고 주행 시 엔진 소음이 없다. 차량 운행이 정보기술(IT) 시스템의 지원을 받는 점도 특징이다.

IT 시스템은 현재의 충전 상태에서 주행할 수 있는 범위와 가까운 충전소 위치 등을 내비게이션에 표시해 주고 전기 플러그를 꽂은 상태에서 미리 설정하면 배터리를 소모하지 않고 에어컨을 가동할 수 있다. 특정 시간대에 충전되도록 미리 시간을 정해 놓을 수 있고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되면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도 갖췄다.

영어로 나뭇잎(leaf)을 뜻하는 차명 리프는 나뭇잎이 자연 속의 공기를 정화하는 것처럼 탄소 배출이 없는 자동차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게 닛산자동차의 설명이다. 리프의 가격은 2010년 출시 시점에 확정되겠지만 사양을 제대로 갖춘 중소형 내지 준중형 차량의 가격 안의 범위에서 정해질 예정이어서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진짜 전쟁터는 이차전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을 놓고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할 태세이지만 결국 전기차의 관건은 '전지' 가격이란 지적이다. 전기자동차나 하이브리드카는 동력원인 전지 기술이 차의 성능을 좌우한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체는 전지 생산 업체를 한두 곳씩 물고 있다. 닛산자동차는 NEC그룹, 도요타는 파나소닉과 제휴하고 있다.

자동차용 전지의 전장(戰場)은 프리우스 등 기존 하이브리드카에 사용되고 있는 니켈수소전지에서 리튬이온전지로 옮겨가고 있다. 현재 휴대전화나 컴퓨터의 소형 전지에 쓰이고 있으나 대용량·고출력 전지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지의 가격과 성능이다. 전기자동차는 1회 충전으로 160km 정도를 달릴 수 있다. 이는 휘발유차의 3분의 1 수준이다. 파워도 약하다.

반면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전지의 가격은 대당 200만∼300만 엔(약 2600만~3900만 원)에 달한다. 미쓰비시자동차가 출시한 아이미브의 가격은 459만9000엔.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받아도 320만9000엔이다. 전지 가격이 자동차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2012년 일본의 전기자동차 수요를 18만 대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가격이나 성능 등을 고려할 때 수요를 창출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과 일본 간 이차전지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 기업은 이차전지 종주국인 일본 기업들보다 출발이 늦었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들과의 납품 계약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국제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차량용 전지는 휴대전화 전지 4000~ 5000개 용량이 들어가는 '이차전지의 꽃'이다. 현재 자동차 전지 시장은 니켈수소전지가 95%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일본 기업이 일찌감치 시장에 진출하면서 단가가 비교적 싼 니켈수소전지를 골랐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은 업종 간 합종연횡으로 니켈수소전지 개발에 주력했다. 파나소닉과 도요타의 '파나소닉EV에너지', 닛산과 NEC의 'AESC', 혼다와 GS유아사의 '블루 에너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뒤늦게 2000년을 전후로 전지 사업에 뛰어든 LG화학과 삼성SDI 등 한국 기업은 리튬이온전지로 눈을 돌렸다. 리튬이온전지는 니켈수소전지보다 10~15% 비싸지만 에너지를 50%가량 더 많이 낸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한국 기업의 전략은 적중했다. JP모건은 전기차용 전지 시장에서 리튬이온전지 비중이 올해 16.1%에서 2020년엔 93.9%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LG화학은 올해 1월 미국 GM의 전기차인 '시보레 볼트'에 리튬이온전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