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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징 이슈] 전기차 시대를 논하다

인산철뱅크 2009. 6. 18. 13:18

세계 자동차 산업이 대격변을 겪고 있다. 미국 GM, 크라이슬러가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일본 도요타까지 비틀거리고 있다. 생존을 위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합종연횡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친환경 전기차로 패러다임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같은 변혁을 한국 자동차업계가 제대로 수용하고 변화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부정적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심각한 생존의 위협을 못 느끼는 이상 눈앞의 떡을 버리고 미래를 위한 자기혁신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그러다 시기를 놓치면 GM처럼 망하는 것이다.

지난 11일 친환경 전기차와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자신문이 마련한 이날 미래토론회에서는전기차 시대의 한국 자동차 산업을 주제로 격론이 벌어졌다. 참석자들은 최근 세계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데도 한국 자동차업계가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물쭈물하다가 불과 몇 년 뒤 친환경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은 몸집이 가벼워진 미국 빅3와 일본, 중국 사이의 3중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제 석유에서 전기로 바뀌는 패러다임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지 못하는 자동차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 참석자들은 눈앞에 다가온 전기차 시대는 기존 자동차 산업의 연장선이 아니라면서 정부 산업정책과 사고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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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 대량생산 시대는 끝났다.

최상열 넥스텔리전스 연구소장=요즘 세계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보면 1908년 포드 T모델에서 비롯된 대량생산(포디즘:Fordism)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기차 시장이 열리면 수백미터의 일괄생산라인을 갖춘 대기업이 자동차 양산을 독점하던 시대가 끝납니다. 요즘 전기차는 모듈화가 잘 돼 있어서 4∼5명이 조를 짜 작은 공장에서도 얼마든지 조립이 가능합니다.

윤재석 A&D 컨설턴트 회장=맞습니다. 조 후지오 도요타 회장은 몇 년 전부터 앞으로 차체 조립은 현지 로컬공장에서 전담하고 도요타는 핵심부품만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PC시장에서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처럼 자동차 시장에서도요타 인사이드(Toyota Inside)’와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미국의 빅3는 이 같은 변화에 순응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한국 자동차 업계도 애써 변화를 외면하는 것같아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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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철 시그넷시스템 사장=자동차 모델의 사이클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도 고려해야 합니다. 미국, 일본에서 20년 전에는 자동차 한 모델이 25만대씩 팔려야 본전을 뽑았지만 지금은 최신모델도 겨우 3∼5만대 팔리고 단종되는 일이 많습니다. 자동차 시장이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바뀌는 가운데 창의적 설계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겁니다. 전기차는 반드시 정형화된 엔진이나 미션을 채택할 필요가 없기에 전혀 새로운 모습의 자동차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1인승, 2인승 소형 전기차 또는 바퀴 안에 모터가 장착돼 방향전환이 360도 자유로운 자동차 설계도 가능합니다. 자동차는 네 바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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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희 전기연구원 박사=전기차를 편의성이 아닌 환경비용의 감소 측면에서 보면 장점이 많습니다. 기존 자동차는 3년 이상 운행하면 매연 배출이 크게 늘어나는데 이때 전기차 개조를 허용하면 환경 측면에서 대단한 이익을 보게 됩니다. 디젤차량의 분진을 줄인다고 수천억원의 정부예산을 들여 엔진을 개조할 것이 아니라 전기차로 개조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인데 정부가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24시간 돌리는 원자력 발전비중이 높은 나라에서는 전력수요가 남아도는 야간에 전기차 충전을 하면 일석이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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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열 소장=전기차 시대에는 여러 개의 중견기업이 모듈화된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서 지역별로 산재한 자동차 조립업체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가 펼쳐질 겁니다. 지역마다 소주회사가 있듯이 우리 고장에는 독특한 디자인과 성능을 지닌 전기차 회사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미 완성차 업체의 생산라인에서도 대량생산에 필요한 프레스 공정 및 도장공정이 크게 줄고 있습니다. 생산기술과 설비의 혁신에 따라서 중견기업도 충분히 자동차 제조가 가능한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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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계열화에서 수평적 협력관계로


윤재석 회장=한국은 완성차 업체가 수직계열화된 부품사들을 거느리는 구도에서 벗어나 수평화된 협력관계를 만들지 못하면 수년 내 심각한 위기가 올 겁니다. 본래 자동차업계는 현대, 대우 등 어디 계열로 분류되는 닫힌 세계고 상호 제휴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자동차의 전자화가 진행되면서 기업 간 벽이 무너지고 유기적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현재 한국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구조개편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최상열 소장=동감입니다. 일본 자동차 산업이 개방향 네트워크로 바뀐 데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장이 큰 영향을 줬습니다. 전자, 전기업체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면서 서로 기여하고 많이 배우면서 성장한 거지요. 일본 자동차업계가 지금은 엔화상승 때문에 판매 부진을 겪고 있지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생산부문을 대폭 구조조정했고 친환경 분야 경쟁력이 워낙 탄탄해서 환율이 조금만 좋아지면 단번에 경쟁력을 회복하고 한국자동차를 밀어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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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희 박사=정부에서 볼 때 전기차 시대에 세수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일 겁니다. 세무당국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기존 자동차 산업에서 구축해놓은 세수규모를 전기차로 전환한 이후에도 유지할 수 있는지겠지요. 현재 금융기관의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자동차 기업들은 그동안 설비투자를 위해서 금융권에서 엄청난 자금을 빌려썼습니다. GM처럼 큰 자동차 회사가 망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채권단이 아닙니까. 전기차 시대로 전환하면서 기존 세수와 채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방안을 보여줘야 정부와 금융권도 움직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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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철 사장=정부도 대기업 위주의 자동차 법·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일본을 보면 중소기업이 제작한 자동차 보급을 위해 다양한 정부지원이 제공되는데 한국의 중소기업은 아예 자동차 쪽에 못 들어가게 겹겹이 막아놓았어요. 전기차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노인, 주부용으로 다양한 자동차 모델을 출시해야 하는데 대기업은 이런 쪽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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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희 박사=전기차의 충전문제를 해결할 기술, 제도적 준비를 갖추는 게 급선무입니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는 공동주택에서 몇몇 가구가 전기차 충전을 하면 아파트 단지 전체의 전기요금이 올라갑니다. 전기료 누진제의 맹점이지요. 전기차 충전에 따른 전력수요를 분산하는 스마트 그리드가 빨리 도입돼야 합니다. 국내 1200만대의 자동차 중에서 10%가 전기차로 바뀌면 기존 전력시스템에선 원전 2기가 더 필요하지만 전력요금을 차등적용해서 야간 충전을 권장하면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전기차 이용자들은 퇴근 후 저녁시간에 세 시간 정도 전기차를 충전하는데 이것을 심야 시간대로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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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 회장=전기차 시장의 성장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것은 분명한데 요즘 언론매체를 보면 친환경 자동차의 시장전망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실제 시장의 변화를 반영한 정직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고 먼 미래의 일이라는 식이지요. 기존 완성차 업체의 의사를 반영해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자료에 기반해서 정부정책이 진행되는 겁니다. 장담하는데 선진국에선 전기차 보급으로 4∼5년 내 세수문제가 제기될 것이고 2020년이면 전 세계 자동차의 22%가 전기차(플러그인, 순수, 연료전지차)로 바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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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대는 예상보다 10년은 일찍 다가온다


임근희 박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030년이면 내연기관 자동차는 박물관에서나 볼 것이란 농담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2020년이 되면 선진각국의 CO
규제는 현재의 내연기관 차량으로 절대 못 맞춥니다. 요즘 선진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자동차 모델은 대부분 하이브리드 자동차입니다. 순수 전기차가 나오면 소비자들은 그쪽으로 옮겨가겠지요.

최상열 소장=도요타의 창업주인 도요타 사키치 회장은 자동직기 발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방직회사를 세웠지만 벌써 1925년 석유에너지의 한계를 깨닫고 100만엔의 현상금을 내걸고 자동차를 움직일 축전지를 공모했습니다. 당시 100만엔은 도요타 방직회사 자본금과 맞먹는 거액이었지요. 2009년은 전기차시장의 원년입니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눈앞에 다가온 전기차 혁명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서 세계 선두에 올라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전기차와 관련해서 이런 생생한 토론의 기회를 준 전자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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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