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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태로 본 중국차(車)의 경쟁력

인산철뱅크 2009. 2. 21. 16:41
중국차 “후발국 무시하지마!”
연 1000만대 생산 세계 3위 질주
 
쌍용차 사태로 중국차(車)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1월 25일 폐막된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도 중국차는 몰락하는 미국의 빅3 (GM·포드·크라이슬러)와 대조적으로 전세계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특히 파산설이 끊이지 않는 GM과 포드의 일부 브랜드를 중국 토종 자동차 회사가 인수할 것이란 소문도 파다하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과 인도의 후발 자동차 기업이 빅3 인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이들이 빅3 일부 브랜드를 인수할 경우 ‘브랜드·기술·미국시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게 될 것”이라고 했다.

▲ 상하이차가 자체 모델로 출시하는 중형세단 ‘룽웨이’ 생산라인. ‘오늘의 품질, 내일의 시장’이란 표어가 걸려있다. photo 상하이차
규모
자동차 생산량, 우리나라 2배 넘어
완성차 업체 130개… 소비도 세계 2위


중국은 이미 자동차 생산에서 세계 3위의 국가로 자리잡았다. 세계자동차공업협회(OICA)와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2008년 한 해 동안 934만대의 차량을 생산해 일본(1150만대), 미국(1070만대)에 이어 3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유럽 제일의 자동차 강국인 독일의 생산량은 이미 추월한 지 오래고, 세계 5위 규모인 우리나라 자동차 생산량(연간 400만대)의 2배를 웃도는 규모다.

현재 중국에는 주요 완성차 업체는 19개나 되고 군소업체까지 포함하면 모두 130개에 달한다. 도요타, GM과 같은 일본·미국의 자동차 회사는 물론이고 한국의 현대·기아차도 각각 이들 현지 자동차 회사들과 합자법인을 설립하고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2008년 초부터 가동된 현대차 베이징 1·2 공장과 2007년 말 가동된 장쑤성 옌청(鹽城)의 기아차 1·2 공장은 각각 연간 60만대, 40만대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다.

자동차 소비시장의 규모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승용차 504만대를 포함해 938만대의 차량이 중국 내수시장에서 판매됐다. 특히 외국과 합자법인이 아닌 중국 토종 자동차 업체의 성장은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토종 자동차 업체는 지난해 130만대를 판매해 내수 시장의 26%를 차지했다. 치루이(奇瑞)자동차와 지리(吉利)자동차는 판매량에서 각각 5위와 9위에 올랐다. 잠재력은 더욱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 조사결과 자동차 등록대수로는 이미 세계 5위지만 자동차 보급은 초기단계에 불과, 인구 33명당 1대꼴로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도 자동차 산업 키우기에 ‘올인’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을 키우는 것이 내수경기 활성화의 관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5일 중국 국무원은 “자동차 시장 부양을 위해 배기량 1600㏄ 미만의 자동차를 구입할 때 붙는 취득세를 기존 10%에서 5%로 감면하고 전기자동차 개발과 자동차 부품기업 육성에 향후 3년간 100억위안(약 2조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인진라이 정책(引進來·안으로 끌어들이다)
“기술 전수해주면 시장 열겠다”
 외국 회사들 앞다퉈 중국 진출


중국 토종 자동차회사들의 성장세도 무섭지만 아직까지 중국 자동차시장을 이끄는 성장엔진은 외국과의 합작(合作)·합자(合資)회사들이다. 현대·기아차를 비롯 세계 10대 자동차 회사들이 모두 중국 현지회사들과 합작업체를 만들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자동차 판매 1위부터 4위에 오른 업체도 모두 중·외 합작회사들이다. 특히 독일의 국민차로 불리는 폴크스바겐은 중국 시장에 회사의 명운을 걸다시피 했다. 중국 토종 자동차 회사인 디이(第一)자동차·상하이자동차와 각각 ‘이치폴크스바겐(一汽大衆)’ ‘상하이폴크스바겐(上海大衆)’이란 2개 회사를 설립하고 중국 자동차 판매시장에서 1위, 2위를 굳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독일의 국민차가 중국의 ‘인민차(人民車)’로 바뀌었다”는 말도 나온다.

높은 이익이 기대됨에도 불구하고 외국 자동차기업이 중국에 독자 진출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국 정부가 자동차 선진기술 습득을 목적으로 합작이나 합자 방식을 통한 진출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국 진출을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현지 회사들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기술을 전수하는 조건으로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정책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도 각각 베이징자동차, 둥펑(東風)자동차와 합작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동차 기술과 선진경영기법은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흘러간다. 중국의 자동차 평론가인 구커(賈可)는 “도요타와 합작한 디이자동차는 다국적 기업과의 합자를 선진기술을 획득하는 창구로 사용했다”며 “또 이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중국 정부의 ‘시장을 기술과 바꾸는 정책(以市場換技述)’이 첨단기술제품 발전에 기여했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기술
한 번 충전으로 400㎞ 달리는 전기차 시판
가격도 GM 절반… 미국 배급망 구축 나서


▲ 치루이 자동차
실제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자동차 기술 향상’이라는 성과로 돌아오고 있다. 조만간 휘발유나 디젤차를 대체할 것으로 보이는 하이브리드나 전기자동차의 경우 기술면에서는 선진국과 별 차이가 없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기간에 베이징에서 전기버스가 시험운행을 마쳤고, 관광지로 유명한 저장성 항저우(杭州)에서는 이미 1000대 가량의 무공해 전기버스가 시내를 누비고 있다. 미국 포드와 합작하고 있는 토종 자동차 업체인 창안(長安)자동차도 캐나다의 그린전지 제조업체인 일렉트로바야와 협력하여 ‘번번(奔奔)’차를 캐나다에 출시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중국업체는 도요타, GM, 폴크스바겐 등 세계 선두기업에 준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자동차 사용원가에 민감한 중국 소비자들도 매일 충전하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전기자동차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전기자동차 개발의 선두에 있는 것은 광둥성 선전에 본사를 둔 비야디(比亞迪·BYD)자동차다.  1995년 배터리업체로 출범한 비야디자동차는 지난 1월 25일 폐막된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한 번 충전으로 400㎞가량을 갈 수 있는 자동차를 선보였다. 서울에서 충전한 뒤 대구까지 갈 수 있는 거리다. 100㎞당 전기소모(12㎾) 비용이 6위안 정도로 동일 휘발유 차종의 8분의 1에 불과한 데 반해 최고속도는 150㎞까지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도 15만위안가량으로 GM이 선보인 전기차 시보레 볼트(4만달러)의 절반에 불과하다. ‘배터리대왕(電池大王)’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 회사의 왕촨푸(王傳福) 회장은 “향후 자동차시장은 비야디의 전기자동차가 주도할 것”이라며 “미국 내 판매와 배급망 구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회사는 전기충전소 건립 방식을 놓고 중국 정부와 의견을 절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자동차 부품시장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중국 전체 자동차 산업에서 부품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0%가량. 시장규모만 약 6000억위안(약 120조원)에 달하고, 크고 작은 주요 부품 업체만 6000개에 달한다. 자동차 부품의 현지화 비율도 높아져 중국 시장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부품업체들의 목을 조여오고 있다. 코트라(KOTRA)는 “중국의 자동차 보유량 증가에 따라 각종 자동차 부품에 대한 시장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 2010년 중국 자동차 부품 생산판매액은 약 7000억위안(약 140조원)에 달할 것”이라면서도 “핵심기술은 아직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현지제품 사용이 점점 늘어나 지난 2005년을 기점으로 한국 부품의 대 중국 수출량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펴냈다.


저우추취 정책(走出去·밖으로 걸어나가다)
덩치 커진 업체들 해외시장에 눈독
GM·포드 등의 유력 인수후보로


특히 중국 최대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완샹(万向)은 이미 세계적인 부품회사로 떠올랐다. 중국의 한 자동차 평론가는 “도요타에 덴소, GM에 델파이가 있다면 중국에는 완샹이 있다”고 했다. 저장성 샤오산(蕭山)이란 소도시의 농기구 수리업체로 출발한 완샹은 자동차 시장의 팽창과 함께 덩치를 키워 국영 기업을 제외한 민간회사 중 3번째로 큰 규모로 성장했다. 중국의 부품업체는 완성차 업체에 비해 미국 시장 진입도 더 빠르다. 스콜러(Schoelle·부품 유통업체), 록퍼드(Rockford·부품 R&D 업체), 먼론(구동축 생산업체) 같은 현지 부품업체를 인수한 뒤 저렴한 중국산 부품에 피인수 기업의 브랜드를 붙여 현지 판매하는 전략이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부품업체들은 현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1000명이 넘는 현지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덩치를 키우고 기술을 축적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08년 한 해 동안 중국 자동차 회사는 모두 64만여대의 자동차를 수출해 89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지난 2005년 처음으로 자동차 수출이 수입을 초과한 직후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같은 후발 개도국 시장은 이미 진출한 지 오래다. 중국 내수 판매 5위 업체인 치루이자동차는 업계 최초로 러시아와 이란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고 마티즈의 짝퉁으로 알려진 QQ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창청(長城)자동차도 2001년부터 중동과 남미 등지에 SUV와 픽업트럭을 수출하고 있다.

▲ 비야디 전기차 / 전기차 충전소 photo 바이두
심지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 시장의 문도 두드리고 있다. 디이자동차는 2003년 중국 업체로는 처음으로 소형승용차인 샤리(夏利)를 미국 시장에 252대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지난 1월 18일 “중국차가 미국 시장에 더 가까워졌다”며 “2025년까지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등극하겠다”는 왕촨푸(王傳福) 비야디자동차 회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중국업체들은 해외업체 인수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중국 최대 자동차 업체인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 경영을 포기한 진짜 이유가 미국 빅3 중 하나를 인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GM의 중국 측 합작 파트너인 상하이자동차는 판매량이 저조한 사브·폰티악·새턴 브랜드의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상하이차는 우리나라 GM대우의 지분도 10%가량 보유하고 있다. 또 포드와 합작하고 있는 창안자동차도 포드가 가진 볼보 브랜드의 유력 인수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선물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중국은 이미 30개국에 저가형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고 그 확장세는 결코 장난이 아니다”라며 “지금 미국 사람이 타고 다니는 한국의 기아차도 처음에는 그렇게(중국차와 같이) 시작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 쌍용차에 대한 중국의 반응 |

“기술 먹고 튀었다고?… 합병하면 기술 이전 당연”
“M&A 실패 교훈으로 삼자” 되레 피해자라고 생각


지난 1월 9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자동차는 중국에서 ‘솽룽(雙龍)차’라고 불린다. 중국 최대의 자동차그룹인 상하이차가 지난 2004년 5억6000만 달러를 들여 인수한 뒤 쌍용차는 상하이차가 보유한 6개 승용차 브랜드 중 하나로 재편되었다. 현재 상하이차가 중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쌍용차는 모두 5종. 최고급 세단인 뉴체어맨과 체어맨W를 ‘신주시(新主席)’ ‘주시W(主席W)’란 이름으로 현지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주종은 SUV다. 중국 현지에서 렉스턴은 ‘레이스트(雷斯特)’, 카이런은 ‘샹위(享御)’, 액티언은 ‘아이텅(愛騰)’, 로디우스는 ‘루디(路帝)’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 쌍용차 액티언 중국 모델 ‘아이텅’photo 상하이차
제품 구성에서 볼 수 있듯이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했던 주된 이유는 쌍용차가 축적한 SUV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다. 쌍용차는 지프, 코란도, 무쏘 등 SUV 생산 경험이 축적된 업체이기 때문이다. 실제 상하이차의 계열사인 난징(南京)자동차는 지난 2005년 영국의 MG로버를 인수한 뒤 로버의 기술을 바탕으로 ‘룽웨이(榮威·Roewe)’라는 독자브랜드 승용차를 생산한 바 있다. 이와 똑같은 전략을 쌍용차에 구사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고유가 여파로 기름을 많이 먹는 SUV가 중국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하자 상하이차가 쌍용차에 대해 매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빅3 가운데서도 SUV와 픽업트럭을 주로 생산하는 크라이슬러가 가장 먼저 파산 신청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쌍용차 경영 포기에 대한 중국 현지의 반응은 한국과 전혀 다르게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상하이차를 ‘먹튀’의 전형으로 보는 것과 달리, 중국에서는 이번 사건을 ‘외국회사 M&A 실패의 교훈’으로 받아들이자는 분위기가 대다수다. 또 쌍용차에서 제기하고 있는 ‘기술 유출’에 대해서는 인정을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한 네티즌은 “경영권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히 기술 습득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의 현대차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기술을 습득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상하이에서 온 한 유학생(27)은 “결혼을 하면 동침을 하는 것처럼 합병을 하면 기술 이전은 당연한 것”이라며 “동침을 거부하면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