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력시장의 경계는 명확하다.
한전, 한수원, 발전5사, 전력거래소가 국내 전력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민간의 역할은 발전시장에 국한돼 있다.
송·변·배전, 발전은 오랜 기간 입지를 다져 온 기업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공급중심의 전력시장이 수요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전력산업도 대변혁을 앞두고 있다. 전력시장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최대 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은 지난해 10월 일본 통신업체 소프트뱅크와 전기·통신·인터넷 서비스를 한데 묶은 ‘결합상품’ 개발을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전력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통신의 융합이 일본에서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2016년 4월부터 일본 전력 소매시장이 자유화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국내 전력업계와 통신업계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기 힘든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해 왔다.
국내 통신 3사도 한국전력과 업무협약을 체결했지만 일본만큼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력재판매는 법적으로 한전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그리드의 등장과 에너지신산업의 대두로 전력과 IT의 융합이 본격화 되고 있다.
굳건했던 전력산업이 정보통신기술(ICT)의 도입과 함께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통신기업들의 전력시장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전력재판매가 허용된다면 통신기업에게 전력시장은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알짜배기 시장이다.
비록 지난해 12월 전력재판매를 허용하는 ‘지능형전력망 구축및 이용촉진에 관한법(스마트그리드법)’이 좌절됐지만 산업부가 준비 중인 에너지신산업촉진특별법에 관련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별법이 시행되는 순간 전력시장에서 통신기업들은 날개를 달게 된다.
SK텔레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SK텔레콤(대표 장동현)은 통신사업자를 넘어 종합 ICT 사업자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한국전력(사장 조환익)과 전력·에너지, ICT 분야 사업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하며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일본의 도쿄전력과 소프트뱅크 수준은 아니지만 전력과 통신의 융합을 위해 두 기관이 협력키로 한 것이다.
한전은 전력·에너지와 ICT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사업역량과 기술을 보유한만큼 융복합 기술과 사업 개발 등에 힘을 더 할 계획이다. AMI 고도화, 통신서비스 연계를 통한 전기소비 효율화, 배전망 지능화 등 차세대 인프라 구축, 전력과 통신의 융합을 통해 국가 차원의 스마트그리드 확산을 공동 추진한다.
SK텔레콤은 2009년부터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참여하며 전력시장에서 경험을 쌓아왔다. 그중에서도 에너지관리시스템(EMS)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쳐왔다. 이를 바탕으로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 빌딩’ 사업을 시작했다.
빌딩의 에너지소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주는 빌딩에너지관리시스템(BEMS)은 SK텔레콤의 주력 사업이다. 2012년부터 BEMS를 상용화해 제주 한라병원, 강원도 영월 동강시스타 리조트, 울산 현대백화점, 스카이파크 호텔 제주점 등에 구축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전기요금이 저렴한 탓에 에너지 절감 효과가 크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2016년부터 추진되는 스마트그리드 확산사업에서는 홈, 빌딩, 공장 에너지효율화사업, 전기차 렌털사업, 수요반응(DR) 등을 제주, 군위, 창원, 부산 등에서 운영할 계획이다.
KT
KT(회장 황창규)는 지난해 12월 1일 경기 과천에 통합 에너지 관제센터인 ‘KT-MEG(마이크로 에너지 그리드) 센터’를 설립했다. 관제센터에서는 전국에 설치한 1400개 전기차 충전시설을 포함해 KT가 관리하는 1700여개 시설의 에너지 생산·소비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병원, 호텔, 공장, 레포츠 시설 등 냉·난방 전력소비가 많은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주는 ‘스마트 에너지’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KT도 SK텔레콤과 동일하게 BEMS를 주력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미 KT 용산, 선릉, 수원 등에 적용해 에너지 절감 효과를 봤고 산업통상자원부(당시 지식경제부) 국책과제인 K-MEG 사업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았다. SK텔레콤과 달리 KT는 국내 통신사 중 유일하게 전국 유선통신망을 확보하고 있어 이를 활용할 방안을 찾고 있다.
2014년 11월에는 수요자원거래시장에 진출해 수요관리사업을 하고 있다. KT가 확보한 용량은 46MW로 규모는 작지만 자체 개발한 수요자원거래 솔루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한국전력과 ‘빛가람 에너지 ICT 융합센터’를 공동 개설하며 협력을 강화했다.
LTE AMI, 스마트홈, 전기차 충전, 신재생에너지 등 ICT와 전력 융합사업을 공동 추진할 계획이다. 또 에너지 빅데이터 분석, 에너지 혁신기술 연구 개발과 벤처육성에도 양사가 힘을 모으기로 했다.
KT는 그동안 추진한 KT-MEG, 제주도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 서울시 전기차카쉐어링 사업 등과 GiGA 인프라, GiGA 플랫폼 기반, 한전의 전력망 운영 노하우를 접목해 나주 지역에 스마트 에너지 서비스를 구현할 방침이다.
KT도 SK텔레콤과 마찬가지로 스마트그리드 확산사업에 참여한다. 전기버스, 전기이륜차, 전기차 카쉐어링, 분산전원, 에너지효율화 등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LG CNS, LG유플러스
LG CNS(사장 김영섭)는 통신사업자는 아니지만 LG그룹의 역량을 집중해 에너지신산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기업이다.
LG그룹은 에너지 사업을 미래 성장전략으로 선정하고 LG전자의 태양광 모듈과 PCS, LG화학의 배터리, LG CNS의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의 수직 계열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특히 LG CNS는 시스템통합(SI) 사업자로서 LG화학의 배터리와 LG전자의 태양광모듈, ESS를 접목해 마이크로그리드 솔루션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미 2014년 9월부터는 폴란드 최대 전력회사 타우론전력의 480억원 규모 AMI 공급·구축 사업을 수주했고, 2015년 9월에는 울릉도 친환경 에너지자립섬 구축사업에 경상북도, 한전과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울릉도 에너지자립섬 구축사업은 세계 최대 규모의 에너지자립섬 사업으로 이를 통해 해외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LG CNS는 2017년까지 울릉도에 마이크로그리드 운영 센터를 건설하고 20MWh의 ESS 설치 및 8MW의 풍력 발전 시설, 1MW의 태양광 발전 시설을 구축해 울릉도에서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의 30% 가량을 생산할 계획이다.
LG유플러스도 한국전력과 지난해 5월 전력과 IoT 융합, 빅데이터 활용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그리드 사업협력 MOU’를 체결했다. 전력-IoT 융합 스마트그리드 모델을 개발하고, 국내 실증, 확산사업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산업단지 대상 스마트그리드 사업화 추진 ▲IoT 기반의 에너지효율화, 보안, 안전관리 분야 기술개발 ▲한전의 스마트그리드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한 국내외 시장 공동개발 등의 구체적인 사업 협력 분야를 선정하고,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LG 유플러스는 홈 사물인터넷(IoT) 사업을 통해 에너지 효율화 사업도 진행 중이다. 그 중 에너지미터(Energy Meter)는 간단한 설치만으로 전기 사용량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전기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불필요한 가전제품을 꺼 전력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이미 7만 가구에 제품을 납품하기로 했고 지난해 상반기까지 2만대가량이 팔렸다. LG유플러스가 운영하는 온라인 매장 ‘IoT shop’에서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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