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2007-04-05 12: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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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살아야했고 그래서 살길을 찾아야만 했었다”. 지난 30일 흐린 날씨속에서 우즈베키스탄 국내선 항공을 타고 1시간 15분만에 도착한 곳. 짙게 깔린 어둠속에서 마중나온 사람들로 잠시 술렁이다 이내 뿔뿔이 흩어지며 고요만이 엄습했고, 간혹 아직 떠나지 않은 손님들중 한사람이라도 태워볼까 싶어 매달리는 택시들만이 밤의 적막감을 달래어 줬다. 나라가 있고, 국기도 있고, 애국가도 있고, 대통령도 있는 나라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으면서도 정작 외부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가 있다. 자치국 카라칼팍스탄(Karakalpakstan)이다. 인구 100만명, 수도는 20만이 거주하고 있는 누쿠스(Nukus)다. 1939년에 수도가 된 누쿠스는 아무다리야 강 삼각주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곳으로 원래 사막 한가운데 있던 작은 촌락이었다. 카라칼팍스탄에도 우리의 뿌리인 고려인이 살고 있다. 지난 1999년에만 해도 10,000여명이 거주했으나 어려워진 경제사정으로 인해 해가 갈수록 이주율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5,000여명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카라칼팍스탄은 인종, 언어, 문화면에서 중앙정부인 우즈베키스탄 민족과는 확연히 거리가 있다. 오히려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흡사한 모습이며 언어 또한 독자어를 사용하면서도 카작과 비슷하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키르키즈스탄이 이웃 나라이다.
양돈 농가에서는 소, 돼지, 닭을 키우면서 시장에 내다팔고 있으며, 특이한 것은 미국에서 성탄절에 사용하는 칠면조가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다. 산채로 한마리에 우리돈 30,000원~45,000숨에 판매되고 있지만 중요한 행사에서 빼놓을 없는 귀한 고기여서 수요도 꾸준하다. 하루 수만명이 오가는 최대 재래시장 오라일리크 바자르(Orailiq Bazar)는 이 나라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우리내 청량리 경동시장과 흡사한 이곳은 카라칼팍스탄에서 생산된 모든 농수산물과 중국을 중심으로 수입된 농수산물이 총망라되어 직거래되고 있다. 카라칼팍스탄에는 특별한 쇼핑센터가 없다. 소규모 소매상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오라일리크 바자르 시장은 카라칼팍스탄 국민들이 일상생활처럼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곳이며, 많은 일자리가 없는 이 나라 사정상 많은 국민들의 생계 터전이기도 하다. 시장 바로 옆에는 이 나라 생명수인 키즈캐트캔(kiz ketken)이 흐르고 있다. 수질은 염료가 조금 섞여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깨끗한 편이어서 여름에는 아이들이 수영을 하며 더위를 식히는 장소로 이용되곤 한다. 이 강과 관련하여 옛 전설에 따르면 “한 소녀가 정말로 사랑했던 소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소녀의 부모는 소년과의 결혼을 반대했고 소녀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한을 남긴 체 이곳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소녀가 떠난 강’ 이라며 이곳을 키즈캐트캔이라 불렀다고 한다.
특히 카라칼팍스탄은 당시에만 해도 황량한 초원과 사막뿐이었지만 한인들은 타고난 근면함으로 익숙치않은 기후와 변화을 극복했고, 이곳에 토벽집과 움막으로 거처를 마련하고 많은 곡식들을 수확하며 질곡의 생명력을 이어갔다. 당시 많은 현지 사람들은 ‘버려진 땅 카라칼팍스탄의 한’ 이었다고 했지만 고려인들은 ‘생명이 도도하게 살아 숨 쉬는 희망의 땅’으로 변화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강제 이주 51년이 흐른 1998년 KOICA 배양선 단원이 파견됐고 이어 1990년 카라칼팍스탄에도 고려문화협회가 개관되어 초대 회장으로 국가 당원경력이 있는 조 알렉세이가 임명됐다.
그러나 고려문화센터의 고민은 당장 한국어를 가르칠 교사와 교재가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쿠스의 한인들은 타슈켄트 한국어 문화교육원의 교사 양성반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카라칼팍스탄 대학 김 스베뜰라나 교수, 김 야나 교수는 KOICA의 도움으로 러시아-한국어 문법 책자를 발간했고, 연이어 한국어 교재를 준비하는 등 교재 사업 및 매년 개최되는 교사 자질 향상 세미나에 적극 참여하며 한국어 교육 전파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현재 카라칼팍스탄 국립대학에는 40여명의 한인 학생들이 전 분야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대부분 이곳에서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나 더 많은 급여가 보장된 이웃나라인 카자흐스탄으로 진출하고 있다. 마침 카라칼팍스탄 국립대학 곳곳에는 한국문화와 관련된 세미나가 개최된다는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한국어 센터에는 봄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KOICA 단원의 지도로 서예인 붓글씨와 한국동화를 읽고 있었다. 다음날 다시 들른 재래시장 오라일리크 바자르에는 쌀쌀했던 어제에 비해 맑은 날씨만큼 여전히 생존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겉모습의 사람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그 역시 신의 뜻이라며 행복하게 받아들였고, 저마다 거친 손마디에는 거칠게 살아온 지나온 세월을 말해주는 듯 했다. 중앙아시아 최빈국의 하나인 이곳에도 가난이 뭔지, 부자가 뭔지도 모른 체 할머니, 어머니 품에 안긴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사람들도 입가에만은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묵묵히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이 카라칼팍스탄인 이었다. 비록 생애 다시 못 올 것만 같은 카라칼팍스탄이지만, 다시 찾은 곳 ‘소녀가 떠난 강 키즈캐트켄’ 의 전설처럼 그녀가 생을 다해 잊지 못했던 소년도 소녀의 뒤를 따라 한 서린 강으로 향했을 거라 생각해보면 카라칼팍스탄의 내일은 우리내 견우직녀의 만남처럼 희망의 미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잠시 머릿속을 스치며 타슈켄트발 항공기로 발길이 향했다. 카라칼팍스탄 누쿠스=최귀영 특파원ckygood21@akn.co.kr <ⓒ '오피니언 리더의 on-off 통합신문' 아시아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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