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 입력 2014.02.24 09:19
1회 충전으로 최대 148㎞.
기아차는 최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14 시카고 오토쇼'에 전기차 쏘울 EV(전기차)를 처음 공개했다. 기아차는 쏘울 EV에 동급 최고 수준의 고용량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해 1회 충전으로 최대 148㎞까지 달린다고 발표했다. 서울 북단에서 대전 남단에 해당하는 거리. 최근 선보인 국내 완성전기차 가운데 가장 먼 거리를 갈 수 있다. 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쏘울 EV를 국내 선보인 뒤 3분기 중 미국에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친환경 전기차 보급이 확산되는 가운데 낮은 연비 효율의 대형차가 대세였던 미국 시장에도 전기차 바람이 분다. 지난 2011년 1만대 수준에 불과하던 미국의 전기차 누적 판매대수는 2012년 5만여대로 증가했다. 닛산의 순수 전기차 리프가 지난해 4만대 넘게 팔린 것을 비롯해 BMW의 전기차 i3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미국에서의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10만대에 육박했다. 기아차가 쏘울 EV를 내놓은 것도 미국의 '전기차 붐'과 무관하지 않다.
전기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의 대세로 떠오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만만치 않다. 또 한국에서도 안착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비관론이 나온다. 가솔린차를 일부 대신할 세컨드카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배터리 기술은 답보 상태인 데다 충전이 오래 걸리고 생각만큼 멀리 가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전기차보다는 하이브리드차가 현실에 걸맞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는 2020년까지 한 번 충전으로 최대 300㎞를 갈 수 있는 2000만∼3000만원대 전기차를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계획대로 차량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시판가격, 보조금 정책, 아파트 중심의 도시에 건설할 인프라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했다.
전기차 시대 열렸나
전 세계 판매대수 0.1%에 불과
2013년 미국 시장의 전기차 판매가 84% 증가했다.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치다. 미국 주식 시장에서도 화제의 기업인 테슬라는 2013년 2만2300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특히 2013년 출시한 모델 S는 4분기에만 6900대 가까이 팔렸다. 당초 예상보다 20%, 3분기보다는 25%가 증가했다. 쉐보레 볼트(2만3094대), 닛산 리프(2만2610대)와 비슷한 판매량이다.
이렇게 상승률이 높다 보니 데이터를 근거로 뉴스를 전달하는 입장에서는 전기차가 금방이라도 세상의 도로를 점유할 것처럼 떠든다. 그러나 미국에서 84% 증가한 판매대수라고 해봐야 9만6000대에 불과하다. 그것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lug-in hybrid car·가솔린엔진과 모터를 동시에 구동하는 하이브리드차이면서 일반 가정에서의 충전이 가능한 차) 4만9000대가 포함된 수치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2013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대수 8340만대의 0.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시장만 국한하더라도 1560만대의 0.6%밖에 되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배터리 전기차 보급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일본 등이다.
프랑스의 2013년 배터리 전기차 판매는 8779대였다. 2012년의 5663대보다 55%가 증가했다. 프랑스 전기차의 베스트셀러는 Zoe로 지난해 5511대가 팔렸다. 일본은 닛산이 배터리 전기차 시장을 주도한다. 21세기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닛산 리프의 글로벌 누적 판매가 2013년 말 10만대를 돌파했다. 2010년 데뷔 이후 4년 만이다. 리프는 데뷔 당시 가장 현실성 있는 전기차라는 평가를 들었고 판매도 지속적으로 상승세다. 2013년 들어 BMW i3가 화제에 오르면서 덩달아 닛산 리프의 판매도 상승 곡선을 탔다.
그러나 이런 판매량은 결코 많다고 볼 수 없다. 이제 전기차(Electric Vehicle)라는 용어보다는 전동화(Electrification) 차량으로 통칭한다. 전동화 차량은 배터리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전기차, 연료전지 전기차 등 전기 모터로 구동하는 모든 종류의 자동차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전 세계 전동화 차량 판매대수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연간 20만대를 넘지 않는다. 점유율은 0.25% 전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전가의 보도처럼 배터리 전기차를 들고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기차 조명받는 이유
갈수록 강화되는 환경 규제 때문
배터리 전기차는 이미 20세기 초반에 도로를 굴러다녔다. 그러나 내연기관 자동차 성능이 급속도로 좋아지면서 배터리 전기차는 자취를 감췄다. 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완전무공해법(Clean Air Act)을 내세우면서 전기차가 다시 떠올랐다. 1998년까지 캘리포니아주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려면 완전무공해차 2%를 판매해야 한다는 것. 이 법이 공포되자 자동차 회사들은 발등의 불로 인식해 해결책을 찾아 나섰고, 가장 먼저 이들 눈에 들어온 것이 배터리 전기차였다.
GM과 포드, 크라이슬러는 전기차 개발 합작회사를 설립해 공동 전선을 펼쳤다. 3사 외에도 많은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 개발에 몰두했다. 하지만 전기차는 바로 배터리 용량 확대의 한계에 부딪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후 'Who Killed Electric Car?'라는 영화가 나오며 석유업계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의견이 등장하기도 했다.
반면 도요타는 배터리 전기차가 아닌 하이브리드 전기차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배터리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하이브리드카도 1900년 포르쉐가 개발해 선보였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사라졌다. 도요타는 1997년 세계 최초로 양산형 하이브리드카를 선보이며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판매는 여의치 않았다. 데뷔 14년째인 2010년까지 일본 시장 누계 판매 100만대, 2011년 미국 시장 누계 판매 100만대 판매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0년대를 지나면서 판매가 증가하기 시작해 2013년 6월 전 세계 누계 판매 300만대를 기록했다.
배터리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등의 판매가 뉴스에 등장하는 빈도에 비해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시장 상황과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세계 경제는 호황의 길을 걸었다. 자동차 판매는 급증했다. 특히 석유 위기와 무관하게 미국 시장에서는 픽업트럭과 대형 SUV 등의 판매가 폭발했다.
그 와중에 캘리포니아주가 내세웠던 완전무공해법은 점차 후퇴했다. 당초 1998년 2%였던 완전무공해차의 의무 판매 비율이 2008년 8%로 1차 연기됐고, 그마저 달성이 어려워지자 2012년부터 3% 판매로 2차 연기했다. 지금은 2017년까지로 세 차례 시한이 연기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전기차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석유 유통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과 이해가 걸려 있는 국가, 업체 등의 갈등,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항속거리의 한계로 인해 사라졌던 전기차가 다시 주목을 끌게 된 것은 기술적인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20세기 말이나 지금이나 1㎾h당 주행거리 8㎞, 충전시간 8시간 전후 등은 그대로다. 30분 만에 가능한 급속 충전은 비상수단이다. 계속 급속 충전을 하게 되면 배터리 수명이 빨리 짧아진다. 배터리 부피가 줄어든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배터리 전기차의 기술은 전반적으로 답보 상태다. 그런데도 미국과 환경, 대도시화, 에너지 등 복합적으로 얽혀 전동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부상했다.
먼저 경영 악화로 돌파구를 찾아야 했던 미국 메이커들이 2009년 전기차로 난국을 뚫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전기차가 급부상했다. 당연히 미국 정부는 업체 행보에 연비와 배출가스 규제라는 명목으로 힘을 실어 줬다. 이는 미국 시장에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들에 압박으로 작용했다. 미국 시장에서 차를 팔기 위해서는 연비와 배출가스 총량 규제를 해소해야 하는데 가장 빠른 방법이 전기차인 것이다. 배출가스 제로의 배터리 전기차는 총 판매대수의 평균 연비와 배출가스를 낮추는 데 아주 좋은 대안이다.
또 하나 근본적인 문제는 지구촌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인한 대도시화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50%가 인구 100만명 이상의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1800년에는 고작 3%만이 도시에 살았다. 2030년에는 60~70%가 도시에서 살아갈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도시화는 대부분 개발도상국들에서 이뤄지고 있다.
급속도로 거대화돼 가고 있는 개발도상국 대도시들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100만명 이상의 대도시가 2012년 말 기준 170개나 된다. 그 대도시 안에서의 환경을 차선책으로나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배터리 전기차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가 대안으로 인식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에너지와 관련된 것이다. 2008년 기준 전 세계 전력 생산은 석탄 40%, 천연가스 20%, 수력 16%, 원자력 15%, 석유 6%순이다. 나라별로 보면 일본 27%, 미국 49%, 중국 79%, 인도는 69%의 전력을 석탄으로 생산하고 있다.
때문에 나라별로 자동차의 구동장치에 대한 정책도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은 최악의 경우 석유 공급이 되지 않더라도 석탄만으로 80%의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더불어 미국보다 매장량이 더 많은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이라는 무기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황사를 넘어 흑사로까지 악명 높은 중국은 한편으로는 화석연료인 석탄으로 전력 생산은 가능하지만 석탄을 태우는 과정에서의 배출가스를 해결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때문에 중국은 배터리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신에너지(친환경)차로 지정해 적극 개발한다는 정책을 7대 신성장 산업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런 정책은 규제를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은 내연기관차를 장착한 2륜차는 시내 진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2010년 연간 2500만대의 2륜 전동차가 판매됐다.
하지만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의 사정은 다르다. 리서치 기업 나비간트는 2014년 글로벌 전동화 차량 판매대수가 34만대에 그칠 것(비록 2013년보다 80% 이상 증가한 수치지만)이라 전망했다.
결국 현재까지는 소비자들이 기꺼이 전기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타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전동화 차량의 점유율 증가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한계가 있다. 아주 긍정적인 전망이라고 해봐야 2030년경에 전동화 차량, 즉 하이브리드카와 배터리 전기차, 연료전지 전기차 등을 모두 합한 점유율이 20%를 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약점이 뚜렷한 전기차
배터리 한계로 시판가격 낮추기 어려워
특히 배터리 전기차가 여러모로 문제다.
오늘날 시판되고 있는 배터리 전기차는 대부분 항속거리 130~160㎞를 표방한다. 이는 배터리 용량과 관계가 있다. 현재 배터리 1㎾h, 즉 1㎾의 전력을 1시간 사용했을 때의 전력량으로 평균적으로 1㎾h당 8㎞ 주행이 가능하다. 이 계산대로 하면 항속거리 160㎞를 표방하는 배터리 전기차들은 20㎾h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는 셈이다.
수년 전부터 배터리 1㎾h의 가격은 1000달러 전후다. 우리 돈으로 약 110만원에 해당한다. 기아 레이의 경우 16.4㎾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으므로 배터리 가격만 약 1800만원이 추가된다.
그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기존 자동차에 크게 뒤지지 않는 항속거리가 가능하다면 배터리 전기차의 수요는 지금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치상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일치할 때 이론처럼 20㎾h의 배터리로 160㎞를 주행할 수 있다. 그러나 배터리의 전해질 등의 문제로 자연 방전이 있을 수 있으므로 160㎞의 평균 항속거리를 안정되게 유지하려면 적어도 30㎾h의 배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미국 시장에 시판되고 있는 닛산 리프의 경우 미국 EPA 발표 기준으로 2012년형 모델까지는 73마일, 2013년형은 84마일이 평균 주행가능거리다. 그러나 실제 리프를 사용하는 유저들은 70마일, 즉 112㎞의 평균 항속거리를 상정하고 사용한다. 그 항속거리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레이도 다를 바 없다. 간혹 주행 시험에서 발표 수치인 139㎞를 주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추운 겨울 등에는 8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전기차를 개발 또는 생산하는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를 대도시 출퇴근용이나 영업용 자동차 또는 세컨드카로 설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배터리 전기차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방향이 틀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줄지어 나온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가 있는 것은 하이브리드 전기차와 같지만, 충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기차로서의 사용도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실용성이 더 높은 쪽으로 자동차 회사 생각이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내보인 것은 GM의 쉐보레 볼트다. 볼트는 평소 전기차로 운행하다가 배터리 충전량이 한계치 이하로 떨어지면 내연기관으로 구동한다. 2012년 파리 오토쇼를 기점으로 전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스포츠카 메이커 포르쉐까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슈퍼카를 선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 전기차 전망은
보조금 한계…세컨드카 전제 다시 전략 짜야
한국에도 지금 배터리 전기차 바람이 불고 있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모든 자동차를 배터리 전기차로 바꾼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전국 10개 도시를 선정해 전기차 보급을 위한 지원에 나선다. 스파크 EV가 생산되는 공장이 있는 창원도 전기차 보급 선도도시로 지정돼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각 도시들이 발표한 내용을 종합하면 금방이라도 한국의 자동차가 모두 전기차로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사실 정부 정책도 아직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보인다. 친환경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중앙과 지방정부의 지원을 전면에 내세워 보급 촉진을 부르짖지만 문제는 그 지원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느냐는 것. 쉐보레 스파크 EV의 경우 3990만원의 가격을 국가와 지방정부의 지원 등으로 170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차의 크기에 비해 여전히 비싸지만 명분이 확실하다면 구입을 고려할 소비자에게는 매력적일 수도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그렇게 지원해서 보급이 늘어난다 해도 가격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질 것 같지 않다. 2300만원 가까이 되는 보조금이 수년 내로 해소될 만한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제로다. 가격 문제까지 고려한 전기차 보급 정책이 필요한데 정작 환경부 등은 비상용 장비인 급속충전장치의 표준화 등으로 초점을 흐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기아차는 배터리 전기차 등 소위 말하는 친환경차에 대한 미래는 아직까지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기본 기술은 확보하되 상황의 변화를 보고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셰일에너지가 부상하는 현시점에서 생각하면 현대·기아차의 생각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친환경차는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돼 있어 마케팅 측면에서는 불리한 조건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명순영·김헌주 기자,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 국장 / 일러스트 : 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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