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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중·대형에서 캐시카우 찾아라

인산철뱅크 2013. 3. 7. 12:06
2013년 03월 06일 (수) 박태준 기자 gaius@etnews.com

 

  
동경 아키아바라에 가정용 ESS가 등장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ESS를 선택하면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지원받아 절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2차전지 분야 소형 시장을 장악한 국내 업계가 중·대형 분야에서도 캐시카우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의 소형 분야 독주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지만 성장가치가 높은 중·대형 시장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한국에 소형 시장 선두자리를 내준 일본은 정부까지 나서며 중·대형 시장 선점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설계 및 소재 등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 저력으로 중·대형 시장만큼은 한국에 내줄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소형 2차전지 시장 규모는 49억1100만셀로 삼성SDI가 이중 11억200만셀을 판매해 시장점유율 22.4%로 1위를 달성했다. 이어 파나소닉(8억셀·16.3%), LG화학(7억2600만셀·14.8%), 소니(3억5300만셀·7.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년과 비교해 국내 업체들의 소형 시장 점유율은 더욱 늘어났다.

하지만 향후 소형 2차전지 시장의 성장 폭은 작은데다, 경쟁심화로 수익까지 줄고 있는 추세다. 일본 시장조사기관인 IIT 역시 소형 시장은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2% 성장에 그치는 반면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위주의 중·대형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일본기업이 소형전지 시장에서 한국기업에 패한 건 예선전에 불과하며 향후 본선 무대는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중·대형 리튬이온 시장될 것”이라며 “가격 경쟁력과 양산체제 구축에 따른 영업활동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완성차 등의 수요기업 확보와 다양한 기업과의 협력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중·대형시장의 뜨거운 감자 ‘일본’=일본은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와 2차전지 종주국으로써 소형시장을 내준 충격을 만회하기 위해 중·대형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2년 ‘그린 성장전략’을 통해 오는 2020년까지 전체 시장점유율 50%를 목표로 전력계통용(35%), 비상발전기 등의 정치용(25%), 전기차용(40%) 3개 중대형 분야를 중심으로 2차전지 종주국의 자존심 회복을 선언했다. 전력계통형 대형 2차전지는 전력계통의 신재생에너지원을 도입함에 따라 예상되는 출력변동 안정화에 적극 활용한다.

2차전지의 대용량화, 에너지효율 개선, 안전성 향상, 각종 하이브리드 제어 등 정부 주도의 기술 지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비상발전기의 정치용 리튬이온 2차전지는 ㎾h당 약 20만엔으로 투자비용 회수기간이 10년가량인 점을 감안해 정부 보조금 지원과 임대시장 활성화를 지원한다. 여기에 보급 확대를 위한 전기요금제도 개선과 보다 강력한 안전성 등의 인증 제도를 강화해 신뢰성을 강조한 시장 환경도 조성한다. 최근에는 한번 충전으로 130∼160km 달리는 전기차용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2020년까지 2배로 향상시켜 해외 시장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ESS 분야의 정부 보급사업 역시 활발하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축전지 전략 프로젝트 팀’을 구축해 각종 세제 지원과 개발 지원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사업은 2011년 말부터 연간 210억엔 규모의 설치 보조금을 운영한다. 가정용은 100만엔, 법인용은 1억엔 한도로 구축비용의 33%를 보조금으로 지원한다. 정부 보급과 함께 기업의 참여도 확대된다. 파나소닉·히타치·NEC 등 관련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다이와하우스와 규슈일렉트릭 등의 전력 기업까지 가세하면서 시장 활성화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 보급 정책과 기업의 시장 참여 확대로 다양한 ESS가 등장하면서 가격하락과 품질향상도 기대된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ESS 시장규모는 2011년 60만6620kWh에서 2012년 70만8585kWh로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가정용 ESS 시장은 전년보다 2970%, 산업용은 748%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수십 배가 넘는 수치다.

지난주 일본 ‘월드 스마트 에너지 위크 2013’에 참석한 효성 관계자는 “일본은 대지진과 소형전지 시장의 어려움을 계기로 ESS를 중심축으로 중대형 배터리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며 “내수 시장이 확대되면서 공급부족으로 인해 경쟁국의 제품이 대거 수입되고 있어 안전과 효율이 검증된 기업이라면 당장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관점에서 비즈니스 모델 만들어야=일본을 중심으로 ESS 시장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홈에너지관리시스템(HEMS)을 겨냥해 다수의 일본 전지 기업과 건설사들이 시장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주택 구매 시 안정적인 전력 수급 차원에서 10㎾급 미만의 ESS를 빌트인 방식으로 설치하는 사업도 한창이다.

파나소닉은 2010년부터 태양광발전설비와 리튬이온 2차전지 전문업체인 산요와 결합한 ‘파나 홈(Pana Home)’ 구축 사업을 통해 실증 사업을 추진 중이다. 향후 에너지 관리 등 사업 전반으로 확대하기 위해 단품 위주가 아닌 가정용에서 산업용까지 포괄하는 에너지망을 구축하겠다는 장기적인 계획도 밝혔다.

전력망과 서비스 산업 등을 융합시킨 민간 주도의 사업도 활발하다. 일본의 오릭스와 NEC 등은 최근 세계 최초로 ESS 리스 사업을 시작했다. 오릭스는 자전거 임대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서비스 체계를 구축한다. NEC는 ESS 관리 제어 등을 맡아 협업 중이다. 이들 기업은 정부로부터 설치 보조금을 지원받아 가정에 ESS와 연동한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구축한다.

수익 구조는 소비자가 고가의 ESS를 설치하고 가정용 풍력·태양광발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고 설비 사용료를 사업자에게 지불하는 방식이다. 초기 비용 없이 ESS를 통해 전기 에너지를 절감하면서 국가 전력 수급에도 안정적인 기여가 가능한 사업이다.

전기차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도 등장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전기자동차에 내장된 전지를 ESS로 활용, 가정에서 충전하고 필요할 때 가정용 전기로도 사용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일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한대로 일반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 나흘분을 공급할 계획이다. 또한 일본 스미토모상사는 전기차가 사용하고 남은 전지를 ESS로 활용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새 제품에 비해 충·방전효율은 떨어지지만 가격은 20∼30% 수준에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다.

하일곤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ESS와 전력시장을 구분하지 않고 고객 입장에서 시장 전체를 바라보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우리의 ESS 등 중대형 배터리 산업 경쟁력은 소비자 관점의 비즈니스 모델 발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술 고도화 기반의 시장 선점은 필수=ESS와 전기차용 2차전지의 경쟁력은 낮은 가격과 오랜 수명 그리고 높은 에너지 밀도에 따른 고용량 실현이다. 시장 초기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10년 이상의 수명을 보장해야 소비자는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중·대형 배터리 시장은 납축전지, 나트륨황전지, 플로우전지 등에서 활용도가 뛰어난 리튬이온 2차전지가 주목 받고 있다.

리튬이온 전지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제품의 모듈화가 가능해 수십 ㎿급까지 확장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단주기, 장주기용 제품화는 물론이고 향후 기술 고도화에 따른 제품 경쟁력을 높일 여지가 충분하다. 이 때문에 국내외 대다수 전지 업체들이 리튬이온 전지 기술 고도화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중·대형 리튬이온 전지는 향후 가격 면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는다.

현재 중대형 리튬이온 전지는 ㎾h당 700달러 선에서 가격 형성 중이며 에너지밀도는 160wh/㎏ 수준이다. 이를 전기차로 활용할 경우 주행거리는 130∼160㎞, 충·방전 수명은 약 3000회로 사용기간은 10년 안팎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300Wh/㎏까지 가능해 1회 충전으로 약 250㎞까지 달리 수 있다. 그 만큼 기술 고도화로 경쟁력을 높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소형 2차전지 역시 전지설계 최적화 기술로 에너지밀도를 20∼30%가량 증가하면서 전지 가격은 30%가량 하락했다. 중·대형 2차전지의 가격은 2015년 전후로 ㎾h 당 500달러 대에서 거래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전지 업체 관계자는 “일본은 우리와 달리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으면서 에너지 활용인식이 높아진데다, 정부까지 나서며 중·대형 시장 선점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며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정부가 시장 물꼬를 터져줘야 하는 상황인 만큼 일정건물, 산업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ESS 구축 의무화나 계통 연계형 제도 마련 등 시장 조성에 정부역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