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현대차의 전기차 블루온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이 ‘3강’을 이뤘던 국내 차세대 전지 시장에 현대중공업이 가세했다. 현대중공업은 글로벌 자동차 부품 회사인 캐나다 매그너 이카(MAGNA E-Car)사와 손잡고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위한 합작사(JV)를 설립한다. 현대중공업과 매그너사는 40 대 60의 비율로 총 2억달러를 투자해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생산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그동안 자동차용 2차전지(리튬이온 배터리, 잠깐용어 참조) 시장에는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이미 미국 GM을 비롯해 10여개 글로벌 자동차 회사를 고객으로 둔 LG화학이 배터리 공장 건설 등에 18억달러를 투자한다. 삼성SDI와 독일 보쉬 합작사인 SB리모티브를 세운 삼성SDI 역시 내년까지 5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역시 독일 콘티넨탈사와 손잡고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한국 업체들뿐 아니다.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했던 소니도 지난해 자동차용 배터리 사업 진출을 선언한 상태다. NEC도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소형 리튬이온전지에서 세계 선두를 다투던 산요를 인수한 파나소닉 역시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20년 300억달러 시장
이처럼 2차전지 생산 업체들이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배경은 시장의 성장성 때문이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30억달러 정도 규모였지만 오는 2020년에는 3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자동차 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전기자동차 개발에 나서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동차용 2차전지 분야에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회사는 LG화학이다.
현대모비스와의 합작법인인 HL그린파워가 현대기아차의 쏘나타와 K5 하이브리드에 배터리 모듈을 납품하고 있다. 또 LG화학은 미국의 GM과 포드, 중국 제일기차와 장안기차, 유럽 르노와 볼보 등 10여개 자동차 회사에 배터리를 납품하는 등 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에 사용되는 소형 2차전지를 주로 생산해 온 삼성SDI도 자동차 배터리 사업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SDI는 자동차 부품 기업인 보쉬와 합작사 SB리모티브를 설립하고, 지난해 3월부터 울산 공장에서 자동차용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 자동차 업체 마힌드라에 2013년부터 배터리팩을 공급하기로 하는 첫 수출 계약을 맺기도 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LG화학 합작법인보다 먼저 수출 계약에 성공한 것”이라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도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다. 지난해 11월부터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의 시험 가동을 마쳤고 올 초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또한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회사인 콘티넨탈과 손잡고 본격적인 배터리팩 생산에 돌입하기로 협약을 체결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주로 전기차에 사용되는 중대형 전지 시장은 연평균 100% 이상 커지면서 수조원대 시장을 이룰 전망이다”라면서 “시장 선점을 위해 부품사들과 완성차 업체 등이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생산체계 구축 등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용 전지 분야에서 합작사 설립이 활발한 이유는 배터리 제어시스템과 자동차 장착 노하우뿐 아니라, 부품사는 배터리의 높은 기술적 장벽이나 특허 문제 등을 공유하거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자동차용 전지는 기술 장벽이 높을 뿐 아니라 특허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 이런 문제를 회피하는 방안으로 합작사 설립이 많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배터리의 기본 단위는 셀이다. 셀들을 조합해서 패키징(팩)을 하는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BMS) 부문까지 갖춰야 판매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셀 단위에서 기술력을 갖춘 업체들은 물론 최종 완성품인 팩을 제조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와 완성차 업체까지 눈독을 들일 수 있다.
실제 삼성SDI는 SB리모티브를 통해 BMW에 셀만 납품하지만 크라이슬러에는 셀과 팩을 동시에 납품한다. LG화학도 GM에 셀만 납품하지만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 제품에는 HL그린파워를 통해 팩을 납품한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자동차용 중대형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은 성장성이 높은 데다, 한국과 일본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배터리 제조 업체들은 셀 기술과 패키징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면 사실상 미래 자동차 산업의 핵심을 장악한다는 점이 있고, 자동차 업체 역시 자체적인 배터리 기술을 가지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자동차 회사들은 계열 부품 회사를 통해 셀부터 팩까지 수직계열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현재의 합작법인 역시 각 기업의 이해득실에 따라서 언제든 합종연횡에 나설 수 있다.
업계 합종연횡 활발
LG화학의 2차전자용 셀
앞서 현대중공업 역시 합작을 택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본사를 둔 매그너사의 전장품 제조 자회사인 매그너 이카는 여태까지 전기차용 배터리 셀 제조 기술에 대한 자체 연구를 진행해 왔다. 현대중공업은 매그너사가 개발한 배터리 셀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전기차 배터리팩 양산 기술에 대한 공동 연구에 조만간 들어간다.
투자금액이 2억달러의 40%인 900억원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다 기술 확보 방안도 구체적으로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2014년 연간 1만팩 생산을 시작으로 2018년에 40만팩, 2020년 80만팩으로 생산량을 늘려나가 2020년에 북미와 유럽에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30%를 차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현대모비스와 LG화학 합작사인 HL그린파워는 현대와 기아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생산하면서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간 상태. HL그린파워는 지난해 처음 연간 흑자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HL그린파워의 지난해 실적은 매출 836억원, 순이익 33억원. 매출은 전년 대비 4300% 증가했고 이익은 300% 이상 크게 늘었다.
반면 SB리모티브는 합작 청산이 점쳐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2월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BMW그룹 회장을 만나 상호협력 방안을 논의하면서,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전기차 관련 부품 사업에서 독자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삼성은 전기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전기자동차 관련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통해 차체(보디)를 뺀 주요 전장부품을 대부분 공급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11월 미래 기술을 전시하는 삼성기술전에서는 전기차 관련 별도 테마 전시관을 설치하고 관련 부품을 한데 모아 전시하기도 했다.
SB리모티브는 지난해 매출 1099억원에 1236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매출은 전년 대비 23% 증가했지만 손실 규모는 77% 확대됐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가 LG화학 외에 SK와도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현대차는 중장기적으로 현대모비스 등을 통해 독자적으로 자동차용 전지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HL그린파워에서 팩으로 만든 뒤 모비스가 개발한 BMS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를 작동시킨다. 배터리 셀만 모비스가 만들 수 있으면 자동차 배터리 관련 일관 생산 체제가 가능해진다. 현대차의 내부 관계자는 “전기차 관련 부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삼성과 우리와의 경쟁관계 형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양사가 협력할 수도 있다”면서 “향후 5년 정도가 시장 선점에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기술력을 확보하고 투자 위험도를 낮추기 위해 어떤 회사와도 협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잠깐용어리튬이온 배터리 한 번 쓰고 버리는 일반적인 전지와 달리 2차전지는 충전해서 다시 쓰는 배터리를 말한다. 휴대전화용 배터리부터 크게는 전기차에도 사용된다. 지금까지 2차전지는 니켈수소를 이용한 전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리튬이온전지 이용이 늘고 있다.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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